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

(126)
다만 얼마만의 빚이라도 갚으며 꼭 재기해서 저는 2004년 지금의 신랑을 만나고 신랑은 7년의 군복무를 마치고 사회에 나와 저를 만나 연애를 하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그러나 신랑은 계속되는 사업실패로 형편이 좋아지면 결혼하자며, 어렵게 광고사업을 시작하였고, 사업이 어느정도 번창하자 저는 2008년 결혼을 하고 두아이도 낳고, 부족한거 없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3년쯤 지났을 때 남편은 사업을 확장하자며 갑자기 호프집을 오픈해서 저한테 운영라고 하여 젋었을 때 한푼이라도 더 번다는 생각에 맞벌이 자영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관 련 글[밝은세상으로] - 개인파산 하게된 동기가![밝은세상으로] - 개인회생 힘든 생활속에[밝은세상으로] - 난 이렇게 개인파산을 신청했다. 호프집을 운영하면서 장사도 잘 되고 하니까 남편이 지금 광고사는 외상..
개인회생 인생의 어두운 터널속에서 1970년도에 3남매의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여유있는 환경은 아니었지만 부족하지도 않았던 저의어린 시절은 막내라는 이유로 아버지, 어머니께 많은 귀여움을 받고 자랄 수 있었습니다.농사를 가업으로 물려 받으신 아버지께서는 항상 부지런히 일을 하셨고 어머니 역시 아버지의 일을 도와드리며 가사일을 돌보곤 하셨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아버지께서 돌아 가시고 미망인이 되신 저희 어머니는 저희 3남매를 키우시며 안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사셨습니다. 관 련 글[밝은세상으로] - 개인회생 힘든 생활속에[밝은세상으로] - 개인회생 경위서 진실성 [밝은세상으로] - 난 이렇게 개인파산을 상업고등학교에 진학을 한 저는 취업을 목표로 하였고 대학 진학은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에서 비록 막내이긴 하지만 집안 살림에 보탬..
개인회생 선처해 주시길 두손모아 간곡히 부탁 드립니다. 채무증대 경위서 저는 강원도 슬하의 2남2녀중 막내로 태어난 000입니다. 어린시절 아버님께서는 건축현장의 노동일을하시며 저희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셨고, 어머니께서는 그 시절에 사방공사라는 일을 하셨습니다. 넉넉한 집안형편은 아니었지만 화목한 분위기 속에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1983년 2월에 소양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지인의 소개로 의정부에 있는 (주)0000에 입사를 하여 열심히 근무를 하였습니다.저는 이곳에서 70만원정도의 급여를 받으며 성실히 근무하였고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며 군입대로 인하여 정들었던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후 군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다시 군에가기전에 근무하던 (주)000에 입사하여 근무를 하는데 아버님께서 연락이 온 것이었습니다. 갑자기 집으로 내려오라는 소식을 접하게..
개인파산 하게된 동기가! 개인파산 하게된 동기가!개인파산 신청인 0 0 0는 파산신청을 하게된 동기를 다음과 같이 작성 제출하오니 추후 사실 진술서에 관하여 거짓이 발생 할 경우 어떠한 처벌도 달게 받겠습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 0 0 0 이라는 사람을 알게 되었고 그 사람과 어쩔 수 어절 수 없는 동거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동거를 한지 첫아이를 낳게 되었고 둘째를 낳고부터 제 인생은 헤어나질 않았습니다. 남편 이000은 돈을 벌지 않았습니다. 첫아이를 낳고 나서도 남편은 일을 하질 않았고 순전히 제가 벌어오는 돈으로 생활을 했습니다. 일이라도 안하면 돈을 쓰지도 말아야 하는데 남편은 당시 노름에 빠져 있었고 돈이 없어 저에게 돈을 요구 하면 어절수 없이 빚을 내서라도 돈을 줘야만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남편의 폭력을 감당..
방법이 없어 많은 고민을 하다 개인회생 신청에 이르게 신청인은 1900년도에 서울에서 5남매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당시 신청인의 가정은 경찰공무원이었던 아버지와 어머니 밑에서 예의바르고, 청렴함을 가훈으로 바르게 자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유복하지는 않았지만 부족함이 없이 살았습니다. 그렇게 서울에서 고등학교까지 졸업 후 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다가 경기 부천에 살고 계시던 000께서 좋은 사람이 있어 선을 보라 하여 선을 보았고 서로 마음이 맞아 결혼을 하였습니다. 후에 1남1녀를 두었습니다. 그렇게 마냥 좋을 것만 같았던 신청인의 삶은, 2005년 당시 배우자가 다니던 직장이 재정이 어려워져서 부득하게 퇴직을 하면서 조금씩 기울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너무나 막막 하였지만, 퇴직시 받은 퇴직금과 모아둔 약간의 돈으로 사업을 하여..
저의 사정을 헤아려 주시어 선처해 주시길 저는 서울시 마포구에서 1974년 장남으로 태어난 000입니다. 부모님 두분 모두 00에서 초등학교도 졸업하시지 못하시고 넉넉하지 못한 집안형편으로 서울로 상경하셔서 아버지는 막노동등을하시다가 시장에서 노점상을 하시며 저희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셨고 어머니께서는 가사일을 하셨습니다. 책임감 강하신 아버지로 인해 부유하진 않지만 화목하게 보낼수 있었습니다. 관 련 글[밝은세상으로] - 개인회생 힘든 생활속에[밝은세상으로] - 난 이렇게 개인파산을 신청했다.[밝은세상으로] - 도박에 유흥비 탕진으로 결국 저는 1995년 000대를 졸업한 후 군에 입대했습니다. 제대 후 학원을 다니며 전자통신자격증 취득을 하고 작은 노래방기기 사무실에 취직하였고 K 등 통신장비회사에서 근무하였습니다. 그 후 공무원 시험준비를 ..
어려운 가정환경 탓에 중학교만 졸업 어려운 가정환경 탓에 중학교만 졸업 한 후 산업전선에 뛰어 들어 일을 했습니다. 그러던 23살 무렵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하여 슬하에 아들 둘을 낳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던 1992년경 남편과 같이 청바지 공장을 운영했습니다. 그러나 청바지 공장을 차린지 5개월 만에 남편이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 6개월간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공장을 접고 남편의 병간호를 해야했습니다. 개인파산 선택의 경우! 6개월 후 퇴원을 했으나 남편의 몸이 정상이 아니라 일을 못했고 제가 밖에 나가 돈을 벌어 겨우 저희 4식구 생계를 유지해야 했습니다. 그러던 1996년경 나라에서 사업자금 대출을 지원해 준다고 하여 남편과 신용보증기금에 가서 대출을 받아 또 다시 청바지 공장을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관 련 글[밝은세상으로] - 올가..
올가미에서 벗어나서 아이들과 같이 살 수 있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며 살고 있습니다. 고교졸업 후 가락동내에 있는 청과물 시장에서 경리 일을 하면서 열심히 생활했습니다. 그러던 1994년경 뜻하지 않은 임신이 되어 지금의 남편 김진중과 결혼하였고 결혼 후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생활하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지경까지 오게된 이유는 2000년경 남편이 유통업을 하면 적은 자본으로 큰돈을 벌수 있다며 성남 시청 앞에 조그마한 가게를 얻어서 유통회사를 차렸습니다. 관 련 글[밝은세상으로] - 진심으로 부끄럽고 참회하는 [밝은세상으로] - 이제와 생각해보니 저의 어리석고 [밝은세상으로] - 개인회생 경위서 참을수 없는 고통 그러나 처음 시작할 당시부터 많은 사업자금이 필요했고 이 과정에서 남편은 자기 명의의 대출과 제 명의로 대출을 받아서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경험도 없이 시작한 사업이다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