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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파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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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파산 돌이킬 수 없었던 시간 개인파산 돌이킬 수 없었던 시간 실제 개인파산 진행 되었던 사례! 신청인은 190**에 태어나 제가 살았던 당시에는 배울 수 있는 기회조차 많지 않았고 저희 집 가정형편도 넉넉하지 않아 초등학교를 다닌 것이 전부였습니다. 1982년에는 현재의 배우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아들 둘을 낳고 현재까지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한 가족의 가장으로서 책임감도 막중해지게 되었습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서 저는 감자, 배추, 무 등 채소를 전문으로 농사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마음먹었던 것과는 달리 농사는 성공하는 해 보다 실패하는 해가 많았습니다. 농사를 지으면서 점점 빚만 늘어나게 되었고 힘든 생활의 연속이었습니다. 개인파산 다른글 읽기[밝은세상으로] - 개인파산 하게된 동기가![밝은세상으로] - 난 이렇게 ..
개인회생 진술서 제출 서류중 기본 신청인 김00에 대한 경위서를 개인회생 진술서 작성하오니 추후 거짓이 발생 할 경우 그 어떠한 처벌도 달게 받겠습니다. 000라는 남편과 결혼 한 후 어느 한날도 편하지가 못했습니다. 남편은 남대문 대도상가에서 수입품 식품을 팔던 사람 이었습니다. 남편의 사업은 그다지 잘되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살수는 있었습니다. 남편의 사업상 물건을 현금결제를 해야만 하는 일이며 팔지 못한 물건은 고스라히 남게 되거나 덤핑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남편은 새로운 물건이 나오면 주저하지 않고 물건을 구입했습니다 .개인회생 진술서 실제 의뢰인. 관 련 글[밝은세상으로] - 개인파산 하게된 동기가![밝은세상으로] - 개인회생 선처해 주시길 [밝은세상으로] - 올가미에서 벗어나서 그로인해 팔리는 물건보다 사는 물건이 더 많..
빚을 갚고 싶으나 현재는 한쪽 눈이 실명이 된 상태라서 어쩔 수 없이 파산을 저는 올해 62세인 000라고 합니다. 지나간 세월을 되돌아 보고 싶지는 않지만 다시금 이야기해야 한다고 하여 잠시 떠올려 봅니다. 저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중학교까지 졸업을 하였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돈이 되는 일이라면 닥치는대로 일을 했고 그러던 1984년경에 택시운전면허를 따서 택시운전 일을 하였습니다. 관 련 글[밝은세상으로] - 개인회생 경위서 내뜻대로[밝은세상으로] - 개인회생 힘든 생활속에[밝은세상으로] - 개인회생 경위서 다시 태어나다 그러나 1985년경 집사람과 성격차이로 이혼을 하게 되었고 저 혼자서 딸아이를 키우며 살았습니다. 그러던 1991년도에는 대출을 끼고 개인택시를 인수하였습니다. 개인택시를 운전하면서 별탈없이 생활을 하였으나 1993년경부터 택시를 살 때 대출받았던 대출..
개인파산 하게된 동기가! 개인파산 하게된 동기가!개인파산 신청인 0 0 0는 파산신청을 하게된 동기를 다음과 같이 작성 제출하오니 추후 사실 진술서에 관하여 거짓이 발생 할 경우 어떠한 처벌도 달게 받겠습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 0 0 0 이라는 사람을 알게 되었고 그 사람과 어쩔 수 어절 수 없는 동거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동거를 한지 첫아이를 낳게 되었고 둘째를 낳고부터 제 인생은 헤어나질 않았습니다. 남편 이000은 돈을 벌지 않았습니다. 첫아이를 낳고 나서도 남편은 일을 하질 않았고 순전히 제가 벌어오는 돈으로 생활을 했습니다. 일이라도 안하면 돈을 쓰지도 말아야 하는데 남편은 당시 노름에 빠져 있었고 돈이 없어 저에게 돈을 요구 하면 어절수 없이 빚을 내서라도 돈을 줘야만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남편의 폭력을 감당..
어려운 가정환경 탓에 중학교만 졸업 어려운 가정환경 탓에 중학교만 졸업 한 후 산업전선에 뛰어 들어 일을 했습니다. 그러던 23살 무렵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하여 슬하에 아들 둘을 낳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던 1992년경 남편과 같이 청바지 공장을 운영했습니다. 그러나 청바지 공장을 차린지 5개월 만에 남편이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 6개월간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공장을 접고 남편의 병간호를 해야했습니다. 개인파산 선택의 경우! 6개월 후 퇴원을 했으나 남편의 몸이 정상이 아니라 일을 못했고 제가 밖에 나가 돈을 벌어 겨우 저희 4식구 생계를 유지해야 했습니다. 그러던 1996년경 나라에서 사업자금 대출을 지원해 준다고 하여 남편과 신용보증기금에 가서 대출을 받아 또 다시 청바지 공장을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관 련 글[밝은세상으로] - 올가..
올가미에서 벗어나서 아이들과 같이 살 수 있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며 살고 있습니다. 고교졸업 후 가락동내에 있는 청과물 시장에서 경리 일을 하면서 열심히 생활했습니다. 그러던 1994년경 뜻하지 않은 임신이 되어 지금의 남편 김진중과 결혼하였고 결혼 후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생활하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지경까지 오게된 이유는 2000년경 남편이 유통업을 하면 적은 자본으로 큰돈을 벌수 있다며 성남 시청 앞에 조그마한 가게를 얻어서 유통회사를 차렸습니다. 관 련 글[밝은세상으로] - 진심으로 부끄럽고 참회하는 [밝은세상으로] - 이제와 생각해보니 저의 어리석고 [밝은세상으로] - 개인회생 경위서 참을수 없는 고통 그러나 처음 시작할 당시부터 많은 사업자금이 필요했고 이 과정에서 남편은 자기 명의의 대출과 제 명의로 대출을 받아서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경험도 없이 시작한 사업이다보..
정말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글을 쓰는 제 자신이 부끄럽고 정말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강원도 삼척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나 동생들이 많다보니 공부도 많이 못했습니다. 초등학교 졸업 후 중학교에 입학을 하였으나 몇 개월 다니지 못하고 학교를 그만둬야 했습니다. 그 후 서울이란 낯선 곳으로 상경하여 영등포에 있는 봉제공장에 취직하였습니다. 거기서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서 월급의 대부분을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께 보내드리곤 했습니다. 그리고 동생들의 뒷바라지까지 하며 혼기도 놓치고 결혼도 못했지만 불평불만 없이 착실히 살아왔다고 자부합니다. 관 련 글[밝은세상으로] - 개인회생 힘든 생활속에[밝은세상으로] - 제발 숨쉬고 살고 싶습니다.[밝은세상으로] - 이제와 생각해보니 저의 어리 그런데 제가 이지경에 ..
이제와 생각해보니 저의 어리석고 미련하고 1975년 충북에서 1남 1녀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무렵 어머니는 작은 구멍가게를 시작하셨습니다. 아버지는 목수 일을 하셨는데, 일하는 날보다 술에 취해계신 날이 더 많았고, 그렇게 술을 드신 날이면, 어머니를 비롯해서 저희 남매를 그리도 몰아댔습니다. 어머니의 눈언저리는 멍가실 날이 없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무렵 어머니는 집을 나가셨고, 아버지는 젊은 여자를 불러들였습니다. 이때부터 저희 남매는 천덕꾸러기가 되었고, 오랫동안 지속된, 지독한 가난과 폭력은 저희 남매 에겐 아직까지도 상처로 남아있습니다. 관 련 글[밝은세상으로] - 진심으로 부끄럽고 참회[밝은세상으로] - 도박에 유흥비 탕진으로 [밝은세상으로] - 난 이렇게 개인파산을 신청했다. 1997년 12월 IMF경제위기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