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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세상으로

개인회생 경위서 다시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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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회생 경위서

 

1973년에 서울 청파동에서 남자로 태어났습니다저희 집은 아버지가 알콜 중독이라서 어렸을 때부터 정신적으로 힘들게 살아왔습니다어머니께서 독실한 기독교신자로 남대문시장에서 마마아동복상가에서 장사를 하시고 아버지가 봉제공장을 하셔서 경제적으로는 부족하게 살지는 않았지만 제가 20살대 아버지가 부도가 나서 보증금도 없는 방 한 칸에서 4식구가 생활을 하며 20대 초,중반까지 어렵게 보냈습니다.




아버지의 알콜 중독으로 수 만 번도 더 저와 싸웠던 기억뿐이 없네요부모님의 사업실패이후 어머니가 마트 생선코너에서도 일하시고 아버지가 택시회사에 들어가셔서 운전을 하셔서 어렵지만 가족모두 힘을 내어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힘든 날들을 보내다가 2년 후 쯤에 어머니가 남대문시장에서 종업원으로 일을 다니셨고 종업원으로 일하던 점포를 빛을 내서 인수하셨습니다. 그리고 현재까지 부모님은 밤 10시에 출근하셔서 그 다음날 저녁7시에 집에 들어오십니다. 잠은 2평도 되지 않는 자리에서 쭈그리고 새벽에 잠깐 주무시고 계속 일을 하십니다. 일요일과 공휴일도 나가서 장사를 하십니다. 그런 어머니의 생활력을 항상 보고 자란 저이기에 매사 부지런하고 게으르지 않고 신앙심으로 바르게 자랐습니다. 대인관계도 재치 있는 입담과 따스한 정을 가지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24살 때 서초구청 차량등록과에서 공공근로를 하면서 열심히 취업을 준비하고 있을 당시에 제 친구가 결혼을 하였는데 거기서 제 인생의 반려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아직은 집안형편상 결혼은 무리다라고 말리셨고 아버지는 장손인 저에게 빨리 장가가라고 독촉하셨습니다이제 결혼이라는 아름다운 행복이 내게 찾아왔구나하고 감사했습니다그래서 26살 때(99425) 결혼을 하였습니다2의 인생이 시작된 것이고 남들보다 조금은 빠르다면 빠른 결혼생활을 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그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결혼하고 6년 만에 파경을 맞았으니까요그 이유는 와이프가 불임이라서 아이를 낳지 못하는데 전 장손이라서 아버지와 와이프의 충돌이 잦았습니다처음엔 집안사정상 부모님과 남동생 그리고 저와 와이프 이렇게 방두개짜리에서 생활을 하다가 보모님이 전세자금을 융자 받으셔서 방세개자리 허름한 주택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와이프가 불임이라는 사실을 결혼 후에 알게 됐습니다. 처음엔 부모님도 강남차산부인과에서 2번의 시험관아기 시술을 전부 해주셨습니다.


거짓없이 솔직한 개인회생 경위서

하지만 그래도 아이가 안생기자 고부간의 갈등이 심해지기 시작하면서 저와 와이프는 분가를 하기로 마음먹고 반지하방을 구하게 됐습니다근데 가구가 들어가지 못하는 좁은 입구여서 어쩔 수 없이 보모님이 반지하로 나가시고 저희가 당시 살고있던 집에서 머물며 분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살던 중 여름에 부모님이 사시는 반지하방에 비가 많이 와서 물이 들이차게 돼서 너무 죄송한 마음이었습니다그러다가 0111월에 처가에서 처갓집근처에 아파트가 싸게 나왔다고 융자를 끼고 사라고 해서 18평정도의 작은 주공아파트를 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022월 달에 전 주윗분들에게 돈을 빌려서 PC방을 운영하였습니다. 제가 한림전문대 처리학과를 96년에 졸업해서 PC방 운영에는 전혀 무리가 없었습니다. 컴퓨터 40대를 전부 제가 조립하고 소프트웨어 설치하고 일일이 손이 안간 곳이 없었습니다. 정말 장사가 잘되었습니다. 아침 10시에 출근해서 밤 12시에 퇴근을 하고 24시 연중무휴로 장사를 했습니다. 몸은 너무 피곤하지만 장사가 잘되어서 몸이 망가지는 지도 모르고 살다가 04년도에 갑자기 몸이 아프기 시작했는데 병원에 가보니 결핵이라고 했습니다. PC방이란 곳이 햇빛을 차단하고 담배연기 자욱하고 어마어마한 전자파가 발생하는 곳이라서 몸이 망가지는 건 순식간 이었습니다.


 

7개월간 치료 후 결핵완치판명을 받았고 열심히 PC방을 운영했습니다근데 문제가 터졌습니다.

 PC방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아버지가 분가해서 살고 있는 제 집에 오셔서 와이프와 다툼이 있었고 폭행으로 이어진 겁니다전 그 현장에 없어서 말리지도 못했습니다그래서 처갓집에서 이혼하라고 막무가내로 달려들더군요처음엔 와이프도 이혼만은 안하겠다고 했는데 장모하고 처제가 신용불량자이고 장인은 몇 달째 월급이 안 나오고 처남은 일할생각은 안하고 놀러만 다니는 그런 상황이다 보니 PC방을 처갓집으로 넘기라고 하더군요그래서 이혼은 말아야겠다 싶어서 PC방을 넘겨줬는데 결국 이혼소송을 당했습니다.


그때 전 아내도 잃고 아버지도 잃고 PC방마저 빼앗기고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잃어버렸죠모든 사람이 힘들지 않은 사람이 없겠지만 전 당시 제 잘못도 없이 의지와 상관없이 한 번에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정신을 차릴 수 없이 고통을 받는 삶을 혼자서 보내다가 두 번의 자살시도를 하여 신경정신과에서 3차례입원과 수개월동안 약물치료를 받아야했습니다진단은 불안 증세와 불면증 , 우울증 , 대인기피증 등의 증상이었습니다.

실제 의뢰인 개인회생 경위서




그때부터 아무와도 만나지 않는 고립된 생활을 하며 친구들과도 만나지 않아서 혼자 지옥같이 외롭게 아프게 살아왔습니다이게 제가 쇼핑몰사업을 하면서 결정적으로 폐업에 이르게 된 동기가 된 것 같습니다사업은 혼자의 힘으로 하는 게 아닌데 믿을 사람 없이 사업을 이끌어 간다는 게 무리라는 사실을 지금에야 와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3년 정도 혼자 무서운 외로움과 가슴 아픔을 겨우겨우 견디며 살아오다가 이렇게 내 자신을 포기하면 안 되겠다 당당하게 다시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되야겠다. 다시 사람 사는 사회로 나가야겠다며 마음을 굳건히 잡아나갔고 075월 달에 인터넷쇼핑몰사업을 시작했는데 하지만 힘든 이혼을 하고 주위에 가족 , 친구 , 친척 아무도 없이사업을 하려다보니 무척 힘들었습니다인터넷쇼핑몰 남성캐주얼의류였습니다.


전 사업하기 전에 한남직업학교 멀티미디어과에서 6개월 과정도 수료하고 착실히 사업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쇼핑몰무료 및 유료교육과정은 일일이 다니며 1년 정도 사업 준비를 했습니다. 당시 오피스텔을 얻어서 사무실과 주거로 동시에 사용하였습니다. 같이 직업학교를 다니던 사람이 의류와 인터넷쇼핑몰경험이 있어서 같이 시작을 했습니다.(동업이 아니고 제가 월급을 주고 직원으로 있었습니다

어쩔수 없는 상황이라면 개인회생 경위서


아침 9시부터 출근해서 새벽에 동대문시장을 다녀오면 새벽 2~3시에 집에 들어오는 아주 힘든 사업이었지만 그 누구에게도 당당할 수있는 쇼핑몰로 성장시키기 위해서 몸을 아끼지 않습니다당연히 정신과 치료 및 약복용은 더 이상 하지 않고 제 마음으로 이겨냈습니다오로지 사업에 대한 생각만 하고 다른 생각은 일체 하지 않았습니다3개월 정도 지나고 나서부터 매출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론과 상식만 알았던 인터넷쇼핑몰을 실제 몸으로 느끼면서 부족한 점을 하나둘씩 채워나가며 늘어나는 매출에 감사했습니다.




옥션 , 지마켓 , 11번가 , 인터파크 , 개인쇼핑몰까지 점점 규모와 매출이 커져갔습니다.

일단 1년 정도는 회사홍보에 치중하고 단골고객유치를 위해서 많은 광고비 지출과 치열한 인터넷 경쟁으로 인한 적은 마진률을 봐야 했습니다그러다 사업 후 8개월 만에 롯데캐피탈에서 사업대금을 대출을 받기 시작하게 됩니다.

오피스텔에서 사무실과 집을 분리하게 됐습니다오피스텔에서 먹고 자고 일하기는 좁고 직원을 더 채용할 생각이었습니다전농동에 사무실을 옮기고 시장 갔다가 새벽에 들어오고 아침에 출근해야 하기 때문에 집은 근처의 원룸을 얻어서 분리를 시켰습니다.


제가 아까 적은대로 이혼의 원인이 아버지에게 있었기 때문에 부모님 댁에 들어가는 것은 너무 힘든 마음 이었습니다.

08년 하반기이후 점점 경기는 않 좋아지고 인터넷의류사업은 광고싸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인터넷 광고를 중지하면 매출이 급격하게 하락하기 때문에 광고비에 집중을 많이 하였습니다사업자금이 부족하면 어머니 , 동생 , 이선희실장이 현금서비스 및 카드론 대출을 받아주기도 하였습니다그리고 대출을 받아서 사업자금으로 빌린 돈을 갚아나갔습니다헌데 089월경 새벽까지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10여일 전부터 아프던 귀가 도저히 참을 수 없이 아파서 응급실에 갔습니다세열 낭종으로 너무 상태가 심각하다고 하여 수술날짜를 잡고 수술을 하였습니다.


이 병은 선천적으로 태어날 때부터 있었다고 하는데 전에도 두 번 수술을 받은 적이 있지만 그때는 부분마취만 하고 간단히 수술하였습니다너무 피곤하게나 힘들면 안면 쪽 안에서 곪아서 1달 정도씩 통증과 고름이 생기는 병이었습니다.

뇌까지 전이될 수 있고 꼭 수술을 받아야한다고 했습니다수술을 했는데 수술시간이 4시간이상 걸리는 힘든 수술 이었습니다몸이 많이 안 좋아지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됐습니다퇴원하고 다음날부터 바로 회사에서 다시 업무를 시작하였고 그러다가 수술부위에 이상이 발견 되서 다시 1달 후쯤 재수술을 받았습니다큰 수술을 두 번을 받고 나니 몸이 많이 지쳐갔습니다.


처음에 오픈마켓(옥션 등)을 위주로 사업을 하는데 오픈마켓은 단골고객도 많지 않고 가격이 싸지 않으면 팔리지 않으니 간이과세에서 일반과세로 전환되고 부터는 세금도 사업운영에 치명타가 되었습니다1년 매출액은 1억 정도였습니다안 좋은 경제를 감안하면 사업을 망치고 있지는 않았습니다그렇지만 쉽게 말해서 앞으로 벌고 뒤로 까지는 장사를 한 것입니다돌파구를 찾기 위해 개인쇼핑몰로의 전환을 시도했습니다.


093월에 직원을 두 명 더 뽑아서 여름시장을 공략하려했는데 결정적인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이선희실장이 새로 들어온 직원을 힘들게 괴롭혀서 한명이 한 달 만에 퇴사를 하고 바로 실장도 말도 없이 퇴사를 해 버린 것입니다그동안 제가 외롭게 살면서 능력 있는 이선희실장을 많이 믿고 신뢰했는데 제가 돈이 다 떨어져가고 더 이상 대출받을 데도 없으니까 헌신짝 버리듯 하고 나 몰라라 했습니다창업멤버로 시작해서 좋은 일 나쁜 일 같이 겪던 사람이라서 전 상처를 크게 받고 말았습니다.


한명 남아있는 직원은 신입이라서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는 실정이었습니다그래도 동대문시장에서 거래처에게 신용을 많이 쌓고 매출이 많이 줄었지만 개인쇼핑몰을 활성화 시켜서 사업을 끌어가야겠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남은 직원 한명과 마지막으로 잘해보려 했지만 낮엔 사무실 새벽엔 동대문시장 너무 지치고 세열낭종으로 수술했던 부위가 계속 아프고 힘들었습니다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남은 직원도 퇴사를 하겠다하여 눈앞이 캄캄하고 현재 술과 약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중입니다개인쇼핑몰로 전환 후 점점 주문과 회원 수는 늘어만 가는데 옆에서 믿을 사람 한, 두 명 정도만 더 있어도 폐업하지 않아도 되는데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결국 끝내 폐업을 730일 날 했습니다현재 예전에 겪었던 정신과에서 치료했던 병들이 무섭게 저를 짖누르고 있습니다다시 신경정신과 치료를 또 받으며 약을 복용하고 있습니다다신 오기 싫었던 병원이었습니다현재 원룸을 부동산에 내놓은 상태입니다그리고 죽지 못해 어쩔 수없이 부모님 댁으로 들어가게 됐습니다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나 현재 막막함뿐 입니다너무너무 제 자신이 원망스럽고 밉습니다제가 개인파산을 신청하는 것은 너무 많은 수업료를 지불했지만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세상에 다시 한번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부탁드리려는 것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아직 젊습니다.

하지만 젊은 이 시절은 저에게 축복이 아닌 불행과도 같습니다정신적인 스트레스와 장애, 육체적인 질병의 고통으로 마음도 몸도 많이 상했습니다제가 가진 이 많은 채무를 현실적으로 도저히 변제할 방법이 없어서 이렇게 파산 면책을 신청합니다저에게 개인회생 경위서 제출로 한 번의 기회를 허락하여 주신다면 비록 심신이 힘들지라도 열심히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경주할 것입니다남들도 돌아볼 줄 아는 자세로 살아가겠습니다저로 인해 피해를 입게 될 많은 채권자들에게는 진심으로 머리숙여 사죄합니다평생의 짐으로 안고 하루하루 새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존경하는 재판장님과 채권자들에게 보답하는 방법이라 생각합니다현재 몸과 마음이 모두 망가진 상태지만 새 생명을 주신다면 꼭 사회에 보답할 줄 아는 사람이 되겠습니다두서없는 글을 끝가지 읽어주심에 깊은 감사를 드리오며 존경하는 재판장님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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