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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세상으로

어려운 가정환경 탓에 중학교만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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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가정환경 탓에 중학교만 졸업 한 후 산업전선에 뛰어 들어 일을 했습니다. 그러던 23살 무렵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하여 슬하에 아들 둘을 낳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던 1992년경 남편과 같이 청바지 공장을 운영했습니다. 그러나 청바지 공장을 차린지 5개월 만에 남편이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 6개월간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공장을 접고 남편의 병간호를 해야했습니다


개인파산 선택의 경우!





6개월 후 퇴원을 했으나 남편의 몸이 정상이 아니라 일을 못했고 제가 밖에 나가 돈을 벌어 겨우 저희 4식구 생계를 유지해야 했습니다. 그러던 1996년경 나라에서 사업자금 대출을 지원해 준다고 하여 남편과 신용보증기금에 가서 대출을 받아 또 다시 청바지 공장을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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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파산 어쩔수 없는 사정


그러나 사업을 차린 다음해인 1997년경 IMF라는 것이 터지면서 공장 운영이 힘들어 졌습니다. 그래서 남편은 은행대출과 카드를 발급받아 부족한 공장운영자금으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쉽게 IMF라는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해서 빚만 지게 되어 결국 1998년도에 공장을 접었습니다





그 후 남편과 잦은 마찰로 인해 남편은 그때부터 본가가 있는 경기도 여주로 내려가 일용직 노가다 일을 하였고 저는 저대로 아이들과 먹고 살기위해 남의 집 공장에 나가 일도 하고 틈틈이 식당에 나가 설거지 일도 하면서 아이들을 키웠습니다. 그러나 여자 혼자 벌어서 두 아이 키우며 생활하기란 쉽지 않아 하루에 두끼를 먹으면서 생활을 한 적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큰아이가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에 가보니 병원에서는 영양실조라는 판명을 받았습니다


개인파산 마지막 기로에서


그때부터 어떻게든 아이들의 배라도 굶기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에 신용카드를 만들어 부족한 생활비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형편은 날로 날로 어려워졌고 제가 버는 월급으로는 카드빚을 갚을 방법이 없어서 계속해서 카드 돌려막기를 하다가 2003년경 카드 한도가 줄어들면서 한 순간에 모든 것이 정지되고 말았습니다. 그 후 카드회사에서 압류한다는 빨간색 고지서와 독촉 전화를 받으며 7년이라는 세월을 버텼습니다.






그러나 빚은 계속해서 늘어만 갔고 거기에 남편 명의로 보증을 섰던 곳에서도 남편이 빚을 제때에 갚지 않아 연체가 됐다며 빚 갚으라는 고지서를 받게 되어 현제 제 앞으로 된 빚이 2억 원이 넘습니다. 남편은 남편대로 아직도 경기도 여주에서 노가다 일을 하고 저는 저대로 남의 집 식당에 나가 일을 하고 아이들은 빚 독촉 때문에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 직장도 제대로 구하지 못하고 백수로 지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빚 갚을 방법이 없어서 개인파산을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부디 면책이라는 관대한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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