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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세상으로

이제와 생각해보니 저의 어리석고 미련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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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충북에서 11녀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초등학교 2학년 무렵 어머니는 작은 구멍가게를 시작하셨습니다아버지는 목수 일을 하셨는데, 일하는 날보다 술에 취해계신 날이 더 많았고, 그렇게 술을 드신 날이면, 어머니를 비롯해서 저희 남매를 그리도 몰아댔습니다어머니의 눈언저리는 멍가실 날이 없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무렵 어머니는 집을 나가셨고, 아버지는 젊은 여자를 불러들였습니다. 이때부터 저희 남매는 천덕꾸러기가 되었고, 오랫동안 지속된, 지독한 가난과 폭력은 저희 남매 에겐 아직까지도 상처로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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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12IMF경제위기 상황 중에 제대를 한 저는 레스토랑주방에서 1년여를 일했지만 월급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레스토랑이 문을 닫으면서 그만두게 되었습니다이후, 1999년 플라스틱공장에서 주야2교대로 12시간이상을 일하면서 돈이 모아지게 되면 전문대학에 입학하리라 마음먹고 있었습니다하지만, 동생의 결혼비용문제로 고민하시던 어머니께 1년여 모은 6백만원을 내놓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재혼을 하셨습니다새아버지는 10년여를 목장인부로 계시다 1997년 무렵 작은 목장을 임대해서 경영하셨지만, 잘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20011월 충청 케이블 티비에 입사해 전송망작업팀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전주위에서 하는 일이라 위험하고 힘들었지만 월급은 90만원이 못됐습니다.



하지만 일자리를 찾느라 몇 달을 쉬었던 터라 이것저것 가릴 처지는 못 되었습니다2003년 여주대학과에 입학한 저는 몇 달전 어머니가 여주군 대신면에서 시작하신 분식집에서 숙식하며 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생각했던 것보다는 장사가 잘되었고 저도 일을 도울 수 있었습니다하지만, 새아버지가 하시는 목장은 상황이 많이 안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 어머니와 친분이 있는 분이 여주읍에 상가건물을 싸게 임대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졸업이 코앞인 저는 여기저기 이력서를 내보았지만, 연락이 없었고 조급한 마음에 장사를 해보겠다며 어머니를 설득했습니다. 동생과 친척 분들의 도움으로 천만원을 빌려 200412월 가게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간판과 식탁, 조리도구까지 중고로 살수 있는 것은 중고로 샀고 인테리어는 특별히 돈을 들이지 않았지만, 생각했던 것 보다 비용이 많이 들었고 초과된 부분은 빚으로 남았습니다. 자리가 잡히고 열심히 하면 잘 될거란 막연한 생각으로 7백만원 정도의 다마스차량(2005)을 할부로 구입했습니다.


얼마 후에는 어머니가 하시던 분식집을 정리하면서 얼마간의 빚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새아버지는 결국 파산신청을 하셨고, 이때부터 저의 식당에서 같이 일하게 되었습니다새아버지도 차가 필요하셨지만 파산신청을 하신 터라 부득이 저의 명의로 베르나차량(2006)을 할부로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배달을 많이 할 생각으로 전단지배포도 했고, 주방아줌마도 구했지만, 경험이 부족한 저희는 모르는 게 많았습니다길을 모르고 건물위치를 모르니 주문받기도 힘들었고 손님들도 답답해했습니다메뉴도 너무 많아서 음식이 빨리 나올 수가 없었고 배달 가서 음식을 꺼내놓으면 국물이 흘러서 손님 앞에 내놓기가 민망했습니다. 주방아줌마 월급이 밀리면서 2006년에는 새마을금고에서 일일 상환하는 조건으로 5백만원을 대출받았습니다.


하지만 얼마 후엔 오토바이를 잃어버리게 되었고 중개업자를 통해 러시앤캐시에서 3백만원을 대출받으면서 진행비 명목으로 30만원을 제하고 나니 270만원으로 어려움을 일시 넘기게 되었습니다하지만 얼마 안 있어 건물 주인이 바뀌었고 월세와 보증금을 올려 줄 수 없어 저는 결혼한 동생의 도움으로 20071월 가게를 옮기면서 다시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전단지배포도 열심히 했고, 색다른 메뉴도 찾아보고, 조리도구도 다시 장만하고 했습니다. 20074월엔 아이비금융에서 300만원을 대출받아 간판을 새로 했습니다조금씩 매출이 나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비만인 어머니는 무릎연골이 너무 안 좋으셔서 일을 너무 힘들어 하셨습니다200710월경에 농협에서 천만원을 대출받았습니다.


러시앤캐시에 3백만원을 상환하고 나머지는 카드대금 납부 및 밀린 공과금과 식자재비, 월세, 인건비 등등 사용하고 나니, 며칠 만에 바닥이 났습니다. 장사는 지지부진했고, 12월엔 또다시 러시앤캐시에서 350만원을 대출받았습니다연말이라 돈들어 갈 곳이 많았고 새해가 되면 좀더 열심히 해서 상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새해가 되어도 금새 장사가 잘되진 않았고, 산지 1년여 지난 오토바이가 고장이 났는데 수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20082월 중개업자를 통해 씨티파이낸셜에서 천만원을 대출받고 진행비명목 100여만원을 이체해주고 오토바이를 샀습니다나머지는 모두 부채상환과 식기세척기(150)및 전력승압비용(80)등으로 쓰여졌습니다. 그동안 전단지배포도 많이 했고, 음식을 빨리, 깨끗하게, 배달할 수있는 노하우도 생겨서 매출은 나아지기 시작했지만 물가가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고심 끝에 음식가격을 500백원씩 올리고 상대적으로 부가가치가 낮은음식은 빼버렸습니다. 이젠 매달 갚아 나가야하는 부채상환이 버겁기만 했습니다20084월 롯데캐피탈에서 350만원을 대출받아 부채를 상환했습니다물가는 감당이 안 될만큼 오르고 있었습니다매출대비 이익은 줄었고 부채는 늘어났습니다두렵기도 서글프기도 하고 자책하기도 했습니다.


5월에는 중개업자를 통해서 산와와 HK상호저축은행에서 650만원을 대출받고 70여만원을 진행비 명목으로 이체했습니다6월에는 새마을금고에서 천만원을 대출받았고 주방아줌마 밀린 월급과 부채상환으로 며칠만에 바닥이 났습니다200812월말엔 아이비금융에서 200만원 추가대출해주겠다는데 뿌리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무섭다는 사채라도 써야할 상황이었습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저의 어리석고 미련하고 무모한 사고와 행동으로 인해 상황을 이렇게까지 만들어온 것에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관계된 많은 분께 면목 없지만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존경하는 판사님, 저는 아직 젊지만 고아로 태어나 평생을 눈물겹도록 고단한 삶을 살아오신 저의 어머님과 새아버지께도 지금 하고 있는 식당은 유일한 희망입니다. 저희 가족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선처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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